제2연평해전

우리의 바다를 지키다 전사한 6인의 영웅들과 참수리 357호정 모든 승조원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승전스토리

1. 전투의 발발

제1연평해전 이후 두 번째로 연평도 근해에서 해전이 벌어졌던 그날도 도합 2척의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과 등산곶(육도) 388호정이 NLL을 1.1km 침범하였고 이에 해군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참수리 편대는 각 편대별로 경비정 1척씩을 맡아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는데, 이 중 684를 맡은 232편대에서는 편대장 김찬 소령이 좌승했던 기함인 358정이 선두를 맡고 357정은 300야드(274m) 정도 뒤에서 북한 경비정 쪽으로 접근하였다. 이윽고 참수리들이 차단 기동을 실시하기 위해 684의 전진방향의 횡으로 가로지르기 시작했고, 684가 358을 지나친 순간 갑자기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358정의 뒤를 따르던 357정은 갑자기 정지한 684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히 방향을 틀었고 이로 인해 357의 좌현이 그대로 684에 노출되었다. 이때, 두 함정의 거리는 500야드(457m)로 북한 경비정의 조악한 수동 조작식 구형 육군용 대공포 및 신형 취급받던 T-34-85의 주포 ZIS-S-53 85mm 전차포로 철갑탄을 쏘더라도 초탄 명중이 가능한 거리였고 무엇보다 78식 저격보총의 사거리 내였다, 북한 경비정이 경고 사격없이 선수의 ZIS-S-53 85mm 전차포를 357호정에 사격함으로써 교전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격대응명령을 내린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은 초탄 명중 이후 4분 후인, 37mm 포탄이 함교에 명중해 아비규환이 된 찰나 저격수의 총탄에 등을 피격당해 전사하였다. 이후 이희완 부장이 의식이 없는 정장을 대신하여 지휘권을 행사하였고, 조타장 한상국 상사(당시 중사(진)) 역시 조타실 피격으로 전사, 기타 승조원들이 중상을 입었다. 또한 이어진 사격으로 인해 엔진이 정지되고 전력 공급 기기가 파괴되어 357정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엔진이 정지하여 전력이 끊긴 상황에서 부장 이희완 중위가 왼쪽 다리엔 고사총 탄두 관통상, 오른쪽 다리는 37mm 2연장 고사포탄에 부상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두지휘를 감행하였으며 20mm 시 발칸포가 전기 계통이 나간 상황에서도 비상 전력을 가동하고 공기 유압 펌프나 스위치 등으로 어떻게든 포를 조작하여 수동으로 발사했다.

전투가 시작되고 대응 사격을 한 지 12분 후, 20mm포 시 발칸 담당 병기부사관 황도현 중사(당시 하사)는 적의 집중 사격 속에서 헬멧을 쓴 두부에 37mm 포탄을 맞아 두부의 3분의 1이 포탄 탄두에 함몰되어 없어진 상태로 방아쇠를 잡고 안은 채 전사하였고, 조천형 상사(당시 하사)가 21포에서 응전하던 도중 등산곶 684호정 함교 뒷편 포좌의 ZPU-4 14.5mm 4연장 고사총과 포대 37mm 2연장 기관포 등의 집중 사격을 받던 도중 포탑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해 전신 화상을 입고 질식사한 채 방아쇠를 잡고 안고 있었다, M60 기관총을 맡고 있던 내연부사관 서후원 중사(당시 하사)도 교전 중에 684에 승조한 저격수에게 왼쪽 흉부를 관통당하고 전사한다.

또한 갑판에서 소병기 사격을 담당하던 승조원들과 기관실, 통신실에 있던 승조원들 다수가 벽을 관통한 총포탄과 7호 발사관 등의 파편에 의해 부상을 입는다. 그 와중에 의무병 박동혁 수병(당시 상병)은 5군데나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의 구호를 위해 분투하나 서후원 중사가 684호에 승조한 함상저격수에게 왼쪽 가슴 심장 부분에 7.62mm 총탄 한 발, 오른팔에 파편을 맞고 쓰러지자 분노하여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난사하다 적의 집중적인 소병기 사격에 재기 불능 상태가 되고, 이를 보다 못해 극까지 참은 분노가 터져 버린 권기형 상병은 자신의 왼손이 고사총과 파편에 부서져 왼쪽 손가락을 못 쓰는 상태로 서 중사가 전사한 거치대 앞에 뛰쳐나가 서후원 하사와 박동혁 상병이 쏘던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오직 오른손으로만 남은 잔탄을 그대로 등산곶 684호에 전탄 발사한다.

2. 대한민국 해군의 대응

참수리 358정은 즉시 대응 사격을 하려 했지만 북한 경비정이 357정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너무 가까운 거리라 사격 통제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서야 북한 경비정을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 경비정은 358에서의 공격은 일체 무시하고 357정만을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358호정은 단 한 발도 피격되지 않고 사상자 및 함정 손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해 한국 해군 PCC들이 급히 북상했지만 북한이 지상 기지에서 실크웜 대함 미사일(스틱스 대함미사일의 개량형)을 발사할 준비를 하는 것이 감지되었고 북한 해안의 해안포 때문에 함포 사거리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오산 공군기지에서는 F-5, F-4 편대가 출격 대기를 하고 있었다.

3. 대한민국 해군의 피해

최초 보고는 4명 전사, 19명 부상, 실종 1명, 무사고 4명이었다.

하지만 실종된 한상국 상사가 SSU 대원들에 의해 바다 속에 가라앉은 357정의 조타실에서 발견되었고, 의무병 박동혁 수병이 후유증으로 사망하면서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또한 참수리 357정이 대파당한것 때문에 전투후 침수 과다로 최종 격침당했다.

아군 함정들은 북측 함정이 퇴각하는 것을 레이더로 확인한 후 확전을 방지하기 위해 퇴각하였다. 하지만, 참수리 357정은 기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ZIS-S-53 85mm 전차포 5발, V-11-M 계열 2연장 37mm 함포 19발, ZPU-4 234발 도합 모두 258발과 88식 보총, 73식 대대기관총, 7호 발사관, 78식 저격보총, 31식 60mm 박격포를 포함한 각종 중화기 공격을 받고 격벽에 구멍이 뚫려 침몰하고 있었던 것. 357, 358정의 장병들은 358정의 해수 펌프까지 동원해가면서, 승조원 중 상당수가 부상당한 상황에서조차 배수작업을 했다. 배가 급격하게 우현으로 기울자 253 편대 소속 328정까지 가세해 357정 우현에 계류시켜 중심을 잡고, 328정이 예인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미 너무 피해가 컸기에 침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6월 29일 정오, 참수리 357정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북한 해군 등산곶 684호정의 포탄 88%가 고속정 좌현에 집중됐다. 위치별로는 주갑판 상부에 122발, 주갑판 하부에 136발씩 피격됐다. 또 주갑판 하부중 선체에 치명적인 흘수선(바닷물과 선체가 접하는 부분)에 모두 42발의 피격 흔적이 있었고 특히 85㎜ 전차포에 의한 피격 5발중 2발이 흘수선 부근에 명중돼 축구공만한 구멍이 났다.

이에따라 아군 20mm 벌컨포 2문 관통 및 전원케이블 손상, 레이더송신단, 통신기 전원, 좌현측 추진엔진과 발전기가 각각 피격받았다. 또 조타실 화재로 인한 천장 및 장비 손실, 통신실 화재로 통신기 열 손상, 정장실, 승조원 침실 구역(6개 격실) 화재및 내부 붕괴 등의 손실이 발생했다. 국방부 조사에서 밝혀진 것으론 지휘기능을 지닌 조타실과 함교에 59발, 기관실에 60발, 흘수선에 10발의 포탄이 명중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북한 경비정의 공격에 대응해 고속정 357호는 포대에 장전된 1천132발 중 중구경 40㎜ 보포스 기관포 6발과 20㎜ 시 벌컨 도합 674발을 발사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4. 북한 해군의 피해

북한 해군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은 교전 중반인 85mm 전차포로 85mm 철갑탄 초탄 발사를 한 지 720초에서 1200초가량 지난 후에 모든 포탑이 파괴되어 포격 불능 상태가 되고 다수의 포수(서주철 등은 제외)나 고사총 사수들이 사망해 7호 발사관과 88식 보총, 73식 대대기관총 등의 소병기 공격만 주고받았다. 아군 고속정의 집중 공격을 받고 조타가 불가능한 상태로 계속 빙글빙글 돌다 북측 경비정의 예인을 받고 25분 만에 퇴각하였다.

지원을 한 3척의 대한민국 해군 측 고속정에서 관측한 자료에선 684의 갑판에 나와 있던 승조원 대부분이 피탄당하여 쓰러지는 광경이 관측되었다.

군사정보지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인민군의 피해는 경비정 대파, 사망 13명(함장 김영식 대위 포함), 부상 25명 등 38명 사상이라고 한다.

5. 제2연평해전 이후의 해군의 변화

1) 대한민국
교전 수칙을 개선하고, 함대의 구성 또한 바꾸었다.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돼 있던 교전 수칙에서 2002년 7월 차단기동 과정을 삭제했으며, 2004년 시위기동과 경고방송을 동시에 하도록 하여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되었다.# 그리고 현장 지휘관의 권한을 강화하여 즉각 대응 능력을 높였다.

또한, 한국 해군은 제2연평해전의 전훈을 반영해 기존의 참수리급 고속정에 소총수용 방호 구조물과 윤영하 소령이 저격당한 함교 옆 부분에 방호판을 설치하는 등 소폭 개량하였고, 승조원들에게 지급되던 기존 구형 방탄모를 케블라 재질의 신형 방탄모로 교체했다. 그리고 국방부는 그 개량안에 부족을 느끼고 보다 대형화되고 강력한 화력과 방호력을 갖추기 위하여 요구 작전 성능을 대폭 올려 신형 고속함 PKX를 개발한다.그리고 이 PKX의 네임쉽인 1번함에는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따 윤영하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건조되는 윤영하급 함정에는 차례대로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이름이 붙여졌다.사업에서 윤영하함 포함 24척을 건조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이를 감축해 18척을 조달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2009년 9월 23일 진해에 위치한 STX 조선해양에서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PKG-A)과, 동급 함정인 한상국, 조천형함의 진수식을 가졌다. 이후 2010년 9월~10월 해군에 인도되며, 참수리급 고속정 교체 사업에서 윤영하함 포함 24척을 건조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이를 감축해 18척을 조달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윤영하급의 사업추진 이후에도 참수리급들의 순차퇴역으로 인하여 공백 예비단계 수준까지 가자, 차기 고속정 사업을 다시 추진하였는데, 이를 통해 개발된 것이 검독수리급 고속정. 1번함인 검독수리 211호정의 무장은 130mm 유도로켓, 76mm함포 1문, 12.7mm원격사격 통제체계 2문으로 서해 NLL 해역을 침범하는 고속정 및 공기부양정을 정밀타격하기 위해 무장이 향상되었다. 특히 12.7mm 기관총은 제2차 연평해전 당시 외부에서 직접 제어하는 20mm 기관포 및 소병기 사수들의 희생이 컸음을 감안하여 원격으로 표적을 조준 및 사격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북한의 대함미사일과 신형 농어급 고속정에 장착된 대함유도탄을 방어 가능한 MASS 소프트 킬 시스템을 탑재하여 함정을 보호하게 하였다.

또한 기존 pkm은 정장이 함내부가 아닌 가장눈에 잘뛰는 함외부의 함교에서 지휘를 했다. 따라서 적의 저격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겨울철 기동시에는 찬 파도를 뒤집어 쓰면서 항해를 해야 하는 큰 단점이 있었다. 신형고속정은 함내부에 설치된 함교에서 정장이 지휘를 하며 방호를 위해 철판을 보강하였다. 다음으로 고속정의 무장을 보강하였다. 기존 pkm은 40미리 함포와 20미리 발칸을 설치하였다. 북한 경비정의 85미리 포에비해 무장이 약했을 뿐만아니라 노출된 갑판위에서 사수가 앉아서 발사를해야했기 때문에 적 기습공격에 피해가 발생 할 수밖에 없었다.
신형고속정은 함내부에서 모든 무장을 통제하면서 사격을 할수 있다. 함포도 40미리에서 76미리로 성능 화력이 증대되었다. 76미리 함포는 1분에 100발을 발사할수 있다.

2) 북한
대한민국 국방부는 북한의 선제 공격 행위를 '명백한 정전 협정 위반이며, 묵과할 수 없는 무력 도발'로 규정하고 북한 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은 국방부의 요구를 무시한 데다 우발적 충돌이라는 통지문을 보내와 유감표명을 하였다.

북한에선 684 정장 김영식 대위를 포함한 해당 전투 전사자들을 전원 영웅급으로 추서하였다고 하며, 또한 고폭탄 파편에 대응하고자, 북한 해군은 전투 시 솜으로 만든 파편 방호복을 입도록 교리를 수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들어서는 윤영하급 등장으로 인한 북한 전투함의 화력 부족을 보강하기 위해 이란으로부터 도입한 7.6cm 주포(윤영하급의 주포와 동일한 모델)를 장착한 신형 전투함을 배치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684의 함명을 김영식 영웅호로 개명했다고 하는데, 684는 2004년에 또 다시 NLL을 넘어 도발하려다 우리 해군의 경고 사격을 받고 퇴각한 뒤로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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