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모레로 6주년 재발막을 태세 충분히 돼있나
김홍렬·前해군참모총장
입력 2008.06.27. 00:13업데이트 2020.08.11. 13:16
서부영화를 보면 권총 찬 사나이가 10보쯤 떨어진 거리에서 결투를 벌인다. 누가 먼저 쓰러질 것인가? 결론은 명백하다. 먼저 뽑아 쏘는 자는 이기고 나중에 뽑는 자는 쏘아 보지도 못하고 쓰러진다.
군에 처음 입대하여 훈련 받으면서 뇌리에 박히는 구호가 "먼저 보고, 먼저 쏘자"이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먼저 가격하는 자 앞에서는 당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최신 무기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선제타격을 받으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전쟁의 원칙이다.
그럼에도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우리 해군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소위 'DJ 교전규칙'을 적용받고 있었다. 이 내용은 ①북방한계선(NLL)을 지켜라 ②우리가 먼저 발사하지 말라 ③상대가 발사하면 교전규칙에 따라 격퇴하라 ④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적이 먼저 쏘거든 맞고 죽어라'는 말이다.
2002년 제2연평해전의 뿌리는 그보다 3년 전의 제1연평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 연평해전에서 북한은 우리 해군에 완패당했다. 어뢰정 1척 침몰, 4척 파손이란 대량 피해를 입었다.
김정일은 절치부심, 당시 작전에서 패한 서해 작전사령부 8전대에 그 귀한 쇠고기를 보내 격려했다. 언젠가는 반격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저의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교전 원칙이 '적이 쏘거든 응사하라'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소가 웃을 전투지침으로 장병들의 손발을 묶어 놓은 채 적의 포격 앞으로 내몬 것이다. 그러기에 제2연평해전의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다. 순직한 6명의 장병들은 우리가 죽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 인색했다. 유가족들의 새까맣게 타들어 간 가슴을 보듬어 주는 데 주저했다. 추도식은 항상 2함대사령관이 주관했고, 정작 이들의 죽음을 책임져야 할 고위층들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자리 피하기에 급급했다.
전쟁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군사작전에 정치논리가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장병들의 소중한 목숨을 햇볕정책의 들러리로 세우려 했던 어처구니없는 정치논리는 두고두고 군의 작전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햇볕으로 눈앞의 적을 감동시켜 승리했다는 예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이솝우화의 동화에만 존재할 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1연평해전의 전승비를 세우고, 제2 해전에서 순직한 장병들의 흉상도 제작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고 했다. 더욱이 서해 NLL은 지금도 북한이 시비를 걸고 있는 사안이기에 제3의 연평해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제3의 연평해전은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먼저, 2함대사령부에 전시되어 있는 제 2연평해전의 '참수리 375호'를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옮겨야 한다. 적의 선제공격으로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는 우리 함정을 직접 보고 만져봐야 한다. 한 팔을 잃고 다른 한 팔로 기관총을 쏘다 순직한 장병들의 숨소리를 온 국민이 느끼도록 해야 한다. 특히 북한이 6·25전쟁을 도발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51.3%의 우리 중고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다음, 순직 장병들은 명실공히 전쟁 영웅으로 추앙되어야 하고 유가족과 부상자들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 끝으로, 현재 해군의 교전규칙은 문제가 없는지, 적의 기습적인 도발로부터 우리 장병들을 지켜낼 수 있는지, 전장상황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지, 행여라도 정치논리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지를 정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제2연평해전 6주년(29일)을 맞아 다시 한번 자랑스런 전쟁영웅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황도현 중사!조천형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제2연평해전 모레로 6주년 재발막을 태세 충분히 돼있나
입력 2008.06.27. 00:13업데이트 2020.08.11. 13:16
서부영화를 보면 권총 찬 사나이가 10보쯤 떨어진 거리에서 결투를 벌인다. 누가 먼저 쓰러질 것인가? 결론은 명백하다. 먼저 뽑아 쏘는 자는 이기고 나중에 뽑는 자는 쏘아 보지도 못하고 쓰러진다.
군에 처음 입대하여 훈련 받으면서 뇌리에 박히는 구호가 "먼저 보고, 먼저 쏘자"이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먼저 가격하는 자 앞에서는 당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최신 무기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선제타격을 받으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전쟁의 원칙이다.
그럼에도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우리 해군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소위 'DJ 교전규칙'을 적용받고 있었다. 이 내용은 ①북방한계선(NLL)을 지켜라 ②우리가 먼저 발사하지 말라 ③상대가 발사하면 교전규칙에 따라 격퇴하라 ④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적이 먼저 쏘거든 맞고 죽어라'는 말이다.
2002년 제2연평해전의 뿌리는 그보다 3년 전의 제1연평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 연평해전에서 북한은 우리 해군에 완패당했다. 어뢰정 1척 침몰, 4척 파손이란 대량 피해를 입었다.
김정일은 절치부심, 당시 작전에서 패한 서해 작전사령부 8전대에 그 귀한 쇠고기를 보내 격려했다. 언젠가는 반격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저의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교전 원칙이 '적이 쏘거든 응사하라'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소가 웃을 전투지침으로 장병들의 손발을 묶어 놓은 채 적의 포격 앞으로 내몬 것이다. 그러기에 제2연평해전의 결과는 예정된 것이었다. 순직한 6명의 장병들은 우리가 죽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 인색했다. 유가족들의 새까맣게 타들어 간 가슴을 보듬어 주는 데 주저했다. 추도식은 항상 2함대사령관이 주관했고, 정작 이들의 죽음을 책임져야 할 고위층들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자리 피하기에 급급했다.
전쟁에서 가장 경계할 것은 군사작전에 정치논리가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장병들의 소중한 목숨을 햇볕정책의 들러리로 세우려 했던 어처구니없는 정치논리는 두고두고 군의 작전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햇볕으로 눈앞의 적을 감동시켜 승리했다는 예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야말로 이솝우화의 동화에만 존재할 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1연평해전의 전승비를 세우고, 제2 해전에서 순직한 장병들의 흉상도 제작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고 했다. 더욱이 서해 NLL은 지금도 북한이 시비를 걸고 있는 사안이기에 제3의 연평해전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제3의 연평해전은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먼저, 2함대사령부에 전시되어 있는 제 2연평해전의 '참수리 375호'를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옮겨야 한다. 적의 선제공격으로 벌집처럼 구멍이 나 있는 우리 함정을 직접 보고 만져봐야 한다. 한 팔을 잃고 다른 한 팔로 기관총을 쏘다 순직한 장병들의 숨소리를 온 국민이 느끼도록 해야 한다. 특히 북한이 6·25전쟁을 도발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51.3%의 우리 중고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다음, 순직 장병들은 명실공히 전쟁 영웅으로 추앙되어야 하고 유가족과 부상자들은 국가에서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 끝으로, 현재 해군의 교전규칙은 문제가 없는지, 적의 기습적인 도발로부터 우리 장병들을 지켜낼 수 있는지, 전장상황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지, 행여라도 정치논리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지를 정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제2연평해전 6주년(29일)을 맞아 다시 한번 자랑스런 전쟁영웅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황도현 중사!조천형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