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얼마전 퇴원한 참수리 357의 부정장 이희완 중위와 통화를 하였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오래만에 참으로 듣기 좋은 뉴스를 들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몰라도 국군의 통수권자가 국군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낮아지면서 군의 사기도 같이 추락했던 일이 있습니다.
군인은 명예와 사기를 먹고 삽니다. 대통령께서 서해교전에서 부상당한 이희완 중위에게 직접 전화를 하셔서 격려하셨다는 이야기는 많은 일을 대변하여 줍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자가 나라를 지키다가 몸을 다친 청년장교에게 직접 전화를 하였다는 것은 군의 사기에 아주 좋은 영향을 주리라고 믿습니다.
대통령께서 나라를 지키느라 자신을 희생한 젊은 장병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김에 조금만 더 보여 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작은 바람에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첫 번째로 작년 6월 29일 우리의 바다를 지키던 젊은 병사들은 자신의 생명 또는 신체의 일부를 그들이 지키던 검푸른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서해를 사수했습니다. 떠나간 젊은이들은 이미 가고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가족들은 지금도 아픈 가슴을 달래며 남아 있습니다. 작년 무더웠던 여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던 그 장소를 가보고 싶었으나, 적과의 교전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 유족이 방문시 발생할 위험 때문에 당시 유족들은 “내 자식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남의 자식을 위험에 밀어 넣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들이 떠난 곳을 방문할 기회를 포기하였습니다. 작년 시점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으며 자식들의 동료를 안전하게 하고자 물러났던 분들입니다.
우리 해군은 지난 서해 훼리호의 사고때도 한 구의 시신도 유실됨이 없이 수습하는 작전을 하고, 서해 훼리호를 인양하였으며 유족들이 그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승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곳을 방문하여 꽃 한송이, 술 한잔을 바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해군 자신입니다. 작년 여름과 달리 남북한 관계도 위험도가 낮아진 상태인 만큼 금년 여름에는 유가족들이 사랑한 우리 해군 장병이 전사한 곳을 방문하여 한 떨기 꽃이나마 바치고, 한잔의 맑은 술을 올릴 수 있도록 하여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짧은 생각이나 유가족이 교전 현장을 가기 위하여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할 국민은 아마도 고정 간첩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되며, 전사한 동료의 가족이 전사한 동료를 위로하기 위하여 현장으로 가는 배편을 경비하기 위하여 출격하는 우리 고속정들은 정말로 기쁜 마음으로 출격할 것 입니다.
두 번째로 고 한상국 중사는 2001년 11월 중사 진급 인사명령을 받은 하사(진)의 계급으로 2002년 7월 1일 부로 해군 중사로 임명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의 기습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임명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해군 참모총장은 스스로가 추도사에서 “파편이 옆 가슴을 관통해도 고인은 키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고 하여 사후에도 참수리 357의 조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우리나라의 현행법에도 실종 후 사망으로 하기에는 일정기간이 경과하여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6월 29일 교전후 바로 시신을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바로 사망으로 처리하여 임명장을 발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사(진)인 상태에서 중사를 추서하였습니다. 법률상 불가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사기를 먹고 삽니다. 고 한상국 중사의 동기인 해군 부사관들은 이러한 대우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러한 문제는 고 한상국 중사의 하사 임관 시점과 그 후배들의 진급 시기 (예를 들면 357의 전탐장 같은 경우는 입대가 한중사보다 1년 늦은 96군번임에도 불구하고 중사였던 반면 고 한상국 중사는 조타수였던 관계로 진급이 늦었습니다.)를 생각할 때 고 한상국 중사는 중사 명령은 받은 상태로 2일을 남겨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법대로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기준이라 한다면 고 한상국 중사의 경우는 다시 한 번 생각하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왕 군의 사기를 생각하신다면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러한 문제 하나하나를 쳐다보는 60만 대한민국 국군과 입영대기자 들의 눈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였을 때 국가가 어떠한 예우를 하는지 잘 보고 있을 것 입니다.
진정 이 나라의 튼튼한 안보를 원하신다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께 조그마한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전화도 하시고 관심을 보이시는 김에 조금 더 관심과 배려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휴가 나온 국군 장병을 “군바리”라고 조롱하며 비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그들이 자신을 희생하기에 우리가 오늘도 잘먹고 잘노는 것입니다. 따듯한 격려의 말을 한마디씩 던져줄 때, 우리가 지불할 국방비가 줄어듭니다. 또한, 예비역들께서는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의 후배들을 보시면, 한마디 격려의 말과 함께 음료수라도 한 잔 사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소한 관심이 우리 국방을 강하게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이왕 쓰시는 김에 조금 더 쓰시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전 퇴원한 참수리 357의 부정장 이희완 중위와 통화를 하였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오래만에 참으로 듣기 좋은 뉴스를 들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인지는 몰라도 국군의 통수권자가 국군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낮아지면서 군의 사기도 같이 추락했던 일이 있습니다.
군인은 명예와 사기를 먹고 삽니다. 대통령께서 서해교전에서 부상당한 이희완 중위에게 직접 전화를 하셔서 격려하셨다는 이야기는 많은 일을 대변하여 줍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자가 나라를 지키다가 몸을 다친 청년장교에게 직접 전화를 하였다는 것은 군의 사기에 아주 좋은 영향을 주리라고 믿습니다.
대통령께서 나라를 지키느라 자신을 희생한 젊은 장병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김에 조금만 더 보여 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작은 바람에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첫 번째로 작년 6월 29일 우리의 바다를 지키던 젊은 병사들은 자신의 생명 또는 신체의 일부를 그들이 지키던 검푸른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서해를 사수했습니다. 떠나간 젊은이들은 이미 가고 없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가족들은 지금도 아픈 가슴을 달래며 남아 있습니다. 작년 무더웠던 여름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던 그 장소를 가보고 싶었으나, 적과의 교전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 유족이 방문시 발생할 위험 때문에 당시 유족들은 “내 자식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남의 자식을 위험에 밀어 넣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들이 떠난 곳을 방문할 기회를 포기하였습니다. 작년 시점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으며 자식들의 동료를 안전하게 하고자 물러났던 분들입니다.
우리 해군은 지난 서해 훼리호의 사고때도 한 구의 시신도 유실됨이 없이 수습하는 작전을 하고, 서해 훼리호를 인양하였으며 유족들이 그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승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곳을 방문하여 꽃 한송이, 술 한잔을 바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해군 자신입니다. 작년 여름과 달리 남북한 관계도 위험도가 낮아진 상태인 만큼 금년 여름에는 유가족들이 사랑한 우리 해군 장병이 전사한 곳을 방문하여 한 떨기 꽃이나마 바치고, 한잔의 맑은 술을 올릴 수 있도록 하여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짧은 생각이나 유가족이 교전 현장을 가기 위하여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할 국민은 아마도 고정 간첩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되며, 전사한 동료의 가족이 전사한 동료를 위로하기 위하여 현장으로 가는 배편을 경비하기 위하여 출격하는 우리 고속정들은 정말로 기쁜 마음으로 출격할 것 입니다.
두 번째로 고 한상국 중사는 2001년 11월 중사 진급 인사명령을 받은 하사(진)의 계급으로 2002년 7월 1일 부로 해군 중사로 임명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의 기습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임명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해군 참모총장은 스스로가 추도사에서 “파편이 옆 가슴을 관통해도 고인은 키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고 하여 사후에도 참수리 357의 조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우리나라의 현행법에도 실종 후 사망으로 하기에는 일정기간이 경과하여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6월 29일 교전후 바로 시신을 확인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바로 사망으로 처리하여 임명장을 발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사(진)인 상태에서 중사를 추서하였습니다. 법률상 불가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사기를 먹고 삽니다. 고 한상국 중사의 동기인 해군 부사관들은 이러한 대우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러한 문제는 고 한상국 중사의 하사 임관 시점과 그 후배들의 진급 시기 (예를 들면 357의 전탐장 같은 경우는 입대가 한중사보다 1년 늦은 96군번임에도 불구하고 중사였던 반면 고 한상국 중사는 조타수였던 관계로 진급이 늦었습니다.)를 생각할 때 고 한상국 중사는 중사 명령은 받은 상태로 2일을 남겨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법대로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기준이라 한다면 고 한상국 중사의 경우는 다시 한 번 생각하여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왕 군의 사기를 생각하신다면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러한 문제 하나하나를 쳐다보는 60만 대한민국 국군과 입영대기자 들의 눈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였을 때 국가가 어떠한 예우를 하는지 잘 보고 있을 것 입니다.
진정 이 나라의 튼튼한 안보를 원하신다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께 조그마한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전화도 하시고 관심을 보이시는 김에 조금 더 관심과 배려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휴가 나온 국군 장병을 “군바리”라고 조롱하며 비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그들이 자신을 희생하기에 우리가 오늘도 잘먹고 잘노는 것입니다. 따듯한 격려의 말을 한마디씩 던져줄 때, 우리가 지불할 국방비가 줄어듭니다. 또한, 예비역들께서는 자신이 근무했던 부대의 후배들을 보시면, 한마디 격려의 말과 함께 음료수라도 한 잔 사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소한 관심이 우리 국방을 강하게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4336 대한민국84년 6월21일 0255 만주국경